입시뉴스 > 입시뉴스 > 고3의 첫 모의고사 사용설명서

고3의 3월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 성적이 된다는 풍문이 있다. 출처는 불확실하다. 지금까지처럼 공부해서는 성적이 오를 수 없으니 긴장하라는 취지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모의고사를 본 후 충격에 빠진 아이들에게는 이 말의 진위가 중요한 모양이다.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들뜬 학생부터 “아니죠? 아니죠?”라며 강한 부정을 원하는 학생들이 모여 강의실은 자신감·열패감 등 여러 감정으로 채워진다. 겨울 내내 기계처럼 숨죽여 공부하던 아이들의 생기가 되살아난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3월 시험은 고2 수준에 가깝다. 앞으로 난이도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수능은 재수생들도 치른다. 남은 8개월을 전력으로 달려도 백분위 하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당연히 3월 점수가 수능 점수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열심히 하면 점수야 오른다. 다만 상대평가인 시험에서 원하는 만큼의 석차를 얻으려면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풍문은 그것의 경고인 셈이다.

아이들도 이번 시험의 무게를 안다. 고3쯤 되니 고민의 깊이도 예전 같지 않다. “제가 지금껏 잘하는 게 없었어요. 그나마 잘하는 게 국어였거든요. 하나라도 잘해서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데, 그걸 망쳐버린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저 서울대 의대 꼭 가야 해요. 엄마가 너무 희생하셨어요. 저 때문에 목동으로 이사 오고, 주말에 대치동까지 데려다주시고…. 엄마가 노력한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봐 걱정돼요. 합격 전까지 성적을 보여드릴 자신이 없어요.”


ⓒ박해성 그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압박과 하기 싫은 공부 사이에서 억지로 힘을 쥐어짜며 신음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점수로 인한 자존감 하락은 차후의 문제다. 아이들의 고심에는 부모에 대한 염려가 담기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부모가 놓아버린 것들을 볼 줄 알게 된 것이다. 이제야 새삼스레 부모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듯 입장을 선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성한 자식을 보며 느끼는 부모의 뿌듯함을 알 것도 같다. 이 찰나를 녹음해서 부모들께 보내고 싶다.

경험상 수능이 다가올수록 아이의 감정 기복은 커진다. 지금 느끼는 미안함은 죄책감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과한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소할 길 없는 마음은 부모님과 대화를 단절시킬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은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없던 일처럼 해소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 상처가 남는다. “재수하고 싶은데 부모님 뵐 용기가 없다”라는 학생이나 “애가 수능을 못 보니까 내 인생은 뭔가, 지금껏 내가 뭘 한 건가 싶고, 괜히 자식이 밉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라던 학부모의 고민은 이 레이스의 또 다른 순서이기도 하다. 그럴 때, 매 순간 아이가 부모를 얼마나 염려했는지를 들려줄 수 있다면 갈등이 조금은 풀릴지도 모른다.

미리 숱한 실패를 해보라고 주어진 기회

모의고사는 어찌 됐든 모의고사이다. 수능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미리 숱한 실패를 해보라고 주어진 기회일 뿐이다. 객관식의 명료함은 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일생에 닥친 첫 난관은 이토록 상냥하다. 그러니 이것을 자신의 성적으로 확정 짓고 미래를 단언하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를 모두 끌어안고 속병을 앓을 이유도 없다. 실패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 사례는 검색만 해도 쏟아진다. 용기를 스스로 얻을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지금의 경험을 잘 보존했으면 한다. 첫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은 아이의 미래를 꾸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모의고사 점수가 수능 점수로, 수능 점수가 인생 점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업인 시험에서 좌절했을 때 대처했던 방법들은 아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아이는 올해 수능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대학에 잘 안착시켜놓았더니 취업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한 번쯤은 무너지는 날이 온다. 그럴 때, 자기 상처만을 아프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겪을 고통까지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귀한 인생의 자산은 없을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라는 말이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