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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FIFA의 판돈 키우기 SBS의 올인 베팅

작성자 : 최고관리자

Date : 2013-03-20 09:58 | Hit : 1,521

2010년 들어 한국 스포츠 방송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등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독점중계 가 바로 그것이다. SBS는 방송 3사가 코리아 풀을 구성해 공동 중계해오던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고 지난겨울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단독으로 생중계했으며, 남아공 월드컵도 독점으로 중계할 채비를 하고 있다. 월드컵 단독 중계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대회가 폐막된 이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현 시점에서 이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러나 이를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으로 중계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 방송사 간 갈등 차원의 문제를 넘어 국제 스포츠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월드컵 중계권료의 상승과 거래 방식이 근본적으로 세계축구연맹(FIFA)과 지역 방송사 간의 국제적 문제며, 여기에는 스포츠 조직과 글로벌 기업, 그리고 각국 미디어 간 권력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FIFA·자본·방송이 얽힌 권력관계

월드컵 중계권과 관련한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려면 스포츠 미디어 산업 복합체(sport media industrial complex)라는 스포츠 시장 구조의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 크게 보아 스포츠 시장은 FIF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같은 스포츠기구와, 이런 조직을 후원하는 글로벌 기업,그리고 경기를 중계하고 후원사 광고를 전달하는 미디어 그룹 등이 상호공생적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월드컵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FIFA는 근본적 존재 이유가 축구와 관련한다양한 문화를 개발하고 이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견실한 자본력과 축구 문화를 각지에 전파하는 능력은 필수며, 따라서 조직의 사업을 후원하는 기업과 축구를 광범위하게 중계해주는 미디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다음으로 글로벌 기업은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세계 각지에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데, 월드컵 본선만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이벤트도 드물기 때문에 다른 어떤 행사보다 훌륭한 광고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스포츠가 갖는 긍정적 이미지와 FIFA가 후원사에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로고 사용권은 회사의 광고 홍보 효과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그룹은 시청률 또는 구독률을 높임으로써 광고판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 보유가 필수인데, FIFA 월드컵 같은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는 언론사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독점 중계권은 이윤 추구의 극대화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자사 채널의 선호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각 미디어 그룹이 단독중계권을 확보하려고 거액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계권료, 왜 천정부지로 뛸까?

이처럼 스포츠 기구와 기업, 그리고 미디어 그룹은 각각의 필요성 충족을 위한 상호공생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항상 조화로운 것만은 아니며, 시기와 사안에 따라 갈등과 협력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최근월드컵 콘텐츠의 상업적 가치가 급속도
로 상승함에 따라 FIFA는 축구 사업 확장과 더불어 조직의 수익 증진을 위해 TV 중계권료 인상 등 공격적 사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 각 지역 방송사에서는 FIFA와의 중계권 협상에서 제한적 역량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였다.
1998년까지만 하더라도 월드컵 중계권료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FIFA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에서 치른 세 차례의 월드컵본선대회 중계권을 국제 텔레비전 컨소시엄에 일괄적으로 판매해 각국 방송사에 배분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거래가 성사된 1987년은 방송 콘텐츠로서 스포츠 프로그램의 가치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시기였기에 중계권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실례로 1990년대에 치른 세 차례 월드컵 중계를 위해 우리나라가 지불한 액수는 18억 원 정도며,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중계권을 두고 코리아 풀이 지불한 455억 원의 약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2002·2006 중계권, 지저분한 거래하지만 1990년대 들어 스포츠의 상업적 가치가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이런 변화는 중계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FIFA는 2002년과 2006년 중계권 패키지를 독일의 ‘키르히 메디아’(Kirch Media)와 스위스의 ‘스포리스’(Sporis) 등 마케팅 기획사에 이전의 월드컵 중계권료보다 10배 이상 비싼 약 1조673억 원에 일괄적으로 양도했으며, 기획사는 지역별방송사를 대상으로 개별 협상을 벌였다. 중계권 시장에서 ‘중간 상인’의 등장은 각 지역 방송사에서 지불해야 할 중계권료의 급상승이란 결과를 낳았다. 즉, 월드컵 중계권 협상이 본격적 이윤 추구의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 중계권 판매는 스포리스에서 협상권을 위임받은 ‘ISL’(International Sport andLeisure)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국의 2002·2006년 월드컵 중계권 위상은 폭등한 가격으로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1999년 최초 협상에서 황금시간대 경기중계를 통한 광고 판매 수익의 극대화라는 개최국의 이점을 근거로 ISL은 1998년 월드컵보다 약 100배 인상된 1500억원을 2002년 월드컵 중계권료로 요구했고, 코리아 풀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ISL은 약 30% 인하된 가격을 제시했지만 한국 쪽은 불합리한 가격으로 판단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원활한 중계권 협상을 진행하지 못한 ISL은 2001년 5월 파산했고, 우리나라는 이의 권리를 승계한 키르히 메디아를 통해2001년 10월 2002·2006 월드컵 패키지를 약 715억 원(2002년 455억 원, 2006년260억 원)에 구매했다. 유럽 지역을 담당한 키르히 메디아 역시 중계권 판매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방송사는 기존보다 20배 이상 인상된 중계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 월드컵 중계가 불투명해지자 FIFA 공식 후원사는 광고 효과 감소를 우려해 각국 방송사와 키르히 메디아를 중재했고, 결국 최초 제시액보다 10% 정도 저렴한 가격에 양쪽은 합의했다. 이런 가격 인하는 기획사의 재정 위축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키르히 메디아 역시 ISL과 마찬가지로 2002년 4월 파산하는 운명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FIFA의 중계권 판매 방식은 오직 FIFA만 과거보다 10배 이상 수익을 거둘 수 있게 했을 뿐, 중간 상인 역할을 한 기획사를 망하게 하고, 지역 방송사에 가격이 폭등한 중계권 강매를 유도한 지저분한 거래였다.
　
SBS의 ‘용기 있는’ 도박

2002·2006년 중계권 협상에서 기획사를 통해 각국 방송사에 수십 배 인상된 중계권료를 지불하도록 한 모습을 지켜본 FIFA는 2010·2014년 월드컵 패키지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국 개별 방송사에 직접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스포츠 조직이 중계권을 직접 판매할 때는
방송연합체와 우선적으로 거래하고, 권역을 대표하는 방송연합체는 각 회원국에 중계권을 재분배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2010·2014년 월드컵 경우 FIFA는 기존 관습을 파기하고 축구 시장의 규모가 큰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각국 방송사에 직접 중계
권을 판매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결과 유럽 스포츠 방송의 협상 창구 역할을 해온 유럽방송연합은 경제력이 취약한 동유럽 일부 국가만을 대표하는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만 놓고 보면 2010·2014년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으로 구매한 SBS의 사례는 이익 창출에 목적을 둔 FIFA의 새로운 중계권 판매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FIFA 입장에서 보면 2002년 월드컵의 개최지이자 7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한 한국은 개별 방송사를 통한 거래 대상 국가로 여길 가능성이 크고, 이런 시각은 지난 4월 5일 방한한 FIFA TV 본부장인 니콜라스 에릭슨의 SBS 단독 중계 지지 발언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는 원칙적으로 코리아 풀 같은 국내 방송사 연합체는 더 이상 FIFA가 선호하는 협상 대상이 아님을 암시하며, 이런 흐름을 파악한 SBS는 방송 3사의 코리아 풀 합의문을 위반하고 추가금액까지 지불하면서 독점 중계권을 사들이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 이에 대한 대가로 SBS는 남아공 월드컵을 독점 중계함으로써 월드컵 기간에 광고수익의 극대화는 물론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방송사라는 이미지의 탈피를 고대하고 있다. 총체적으로 검토해봤을 때 FIFA의 월드컵중계권 판매 정책은 철저히 자본 논리에 움직이는 ‘머니게임’이며, 그 우산 속에서 벌어진 SBS의 ‘용기 있는 선택’ 역시전적으로 자사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행동임이 틀림없다.
　
국민 없는 국가대표는 없다

그러나 방관만 할 수 없다. 아무리FIFA가 상업주의에 근거한 중계권 판매원칙을 고수할 지라도 이 때문에 공영방송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방송정책의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한 국가대표팀 경기가 국민에게 전달하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시장논리로만 계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따라서 월드컵 중계권을 비롯한 스포츠 미디어 시장의 경우 국제적 흐름을 어느 정도 수용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방송 정책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시기적으로 단독 중계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회 종료 이후 이에 대한 면밀한 사후평가를 통해 SBS 독점 중계가 남긴 득과 실을 철저히 따져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 스포츠 방송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만약 FIFA의 시장주의적 원칙에 따라 향후에도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조정자를 통해 국제 스포츠 기구와 협상 때 방송 3사가 전략적 공조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조정자의 임무는 특정 방송사를 통한 효율적중계권 취득을 돕고, 이후 합리적 방법으로 중계권을 재분배해 방송사에서 경기를 순차적으로 중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파는 어디까지나 공공재이며, 국민 없는 국가대표는 존재할 수 없기에 정부가 스포츠 미디어 시장에 개입할 근거는 충분하다

글•이정우
영국 러프버러대 스포츠사회학 박사.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운영위원, 한국스포츠외교포럼 정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