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문제 > 시사자료 > ‘신인류’ ‘X세대’의 추억, 새로운 현상될까

복고 히트 상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MBC <무한도전>의 1990년대 가요 특집편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시청률이 20% 안팎에 이르렀다. 1990년대 대중문화를 배경으로 만든 tvN의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역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초·중반의 대학을 배경으로 한 영화 <건축학개론>도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복고는 확실한 흥행 코드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시대든 복고 열풍은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복고 현상은 몇몇 측면에서 특징이 있다. 일단 복고의 대상이 되는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가 즐겼던 문화로, 3040세대가 주된 타깃이다. 또 하나는 총체적이라는 점이다. 영화와 드라마와 대중음악에서 복고 바람이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복고 열풍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문화 현상으로 거론된다.

1990년대는 한마디로 ‘대중문화의 한국화’가 이뤄졌던 시기다. 그전까지 서구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 스타일의 대중문화를 일궈내던 시대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무분별한 베끼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점차 우리 스타일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냈다.


ⓒMBC <무한도전> 갈무리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위)는 복고 열풍의 대표적 히트 상품이다.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통해 스크린을 지켜낸 영화계는 <결혼이야기>(1992) <미스터 맘마>(1992) 등의 기획영화를 통해 새로운 감각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편제>(1993)가 한국 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명을 동원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프로듀서 시스템을 정착시킨 한국 영화계는 대중의 수요를 읽고 이에 맞춘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600만 불의 사나이> <맥가이버> <에어울프> 등 외국 드라마가 점령했던 안방극장은 <질투>(1992) <마지막 승부>(1994) 등 한국형 트렌디 드라마가 제작되고 <우리들의 천국> (1990) <내일은 사랑>(1992) 등 한국형 청춘 드라마가 만들어지면서 국산화에 성공했다. <여명의 눈동자>(1991)와 <모래시계>(1995) 같은 대형 기획물도 이때 등장했다.

대중음악계는 가요가 팝음악을 완전히 제압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팝음악의 영향이 강한 편이었지만 신해철의 N.EX.T,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등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가요계의 지평을 넓혔다. 1990년대 가요 시장은 ‘밀리언셀러’의 시대였다. 100만 장 이상 음반을 판매한 가수가 여럿 나왔다. 1990년대 후반부로 가면서 아이돌을 내세운 댄스음악이 강세를 보이며 강력한 팬덤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런 1990년대 대중문화를 즐긴 세대는 어떤 세대였을까? 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산업화와 선배 세대가 이룬 민주화의 과실을 즐기며 호황의 정점에 섰던 이들이다.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때 외신에서 한국을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나라’라고 묘사했는데, 이 세대가 바로 일찍 터뜨린 샴페인을 맛본 세대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교복 자유화와 전교조 1세대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자유를 만끽했다. 1991년 분신 정국을 거친 후 학생운동은 급속도로 세가 약해졌고 그 빈자리를 ‘자아실현’이 채웠다. ‘세계화’를 앞세운 김영삼 정부의 부추김에 힙입어 대학생들의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보편화되었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거야’ ‘우리들의 삶은 우리 부모님의 삶보다 풍요로울 거야’ 하는 낙관론이 이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tvN 제공


ⓒtvN 제공 복고는 확실한 흥행 코드로 자리 잡았다. 맨 위부터 영화 <건축학개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놀아본 적 있어서 ‘놀 줄 아는’ 세대

세상은 그들을 ‘신세대’ ‘신인류’ ‘X세대’ ‘오렌지족’이라고 불렀다. 역사상 가장 소비지향적인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그전까지 제품의 기능을 강조하던 광고들은 제품의 이미지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을 쓰면 무엇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런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그들은 일찍 터뜨린 샴페인을 즐겼다.

그 풍요의 정점에서 외환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들은 취업에 애를 먹었다. 계속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던 한국 경제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취업문은 굳게 잠겼다. 풍요의 첫 세대였던 이들이 불황의 첫 세대가 되었다.

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한 이들이 첫 번째 맞은 고비는 ‘카드 대란’이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이들은 소비 성향을 쉽게 줄일 수 없었다. 이들의 삶은 끊임없는 거품과의 전쟁이었다. 이 세대 가운데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부동산 거품의 막차를 탔다. 이들이 집을 사자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하우스푸어 1세대’가 되었다. 그들의 삶은 이렇게 첫차와 막차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35~45세(특히 40~45세)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과거는 있지만 미래는 없다. 부모 세대와 달리 가장이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이상 맞벌이를 해야만 이른바 ‘평균적’인 가정을 일굴 수 있다. 육아는 어린이집을 보낼 때부터 전쟁이다. 유치원도 입시를 치러야 한다. 정년은 짧아졌고 그나마 중간에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평생 납부해도 국민연금 수령액은 쥐꼬리다. 은퇴 이후 돈벌이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집을 사면 하우스푸어가 될까 걱정이고 집을 사지 않으면 높은 전셋값 때문에 허리가 휜다.

이들에게는 현재도 없다.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이들이 맛보았던 민주화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이들은 선배 세대인 386세대보다 더 강한 야권 성향을 보여준다. 각종 여론조사와 선거에서 여당 지지율이 가장 낮게 나오는 연령층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사회적 사춘기’를 거친 세대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내건 촛불집회에 나왔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구조 실패’를 비판하며 거리에 나왔다. 학생운동이 쇠퇴한 시기에 대학에 다니며 가장 정치에 관심이 없던 세대가 지금은 가장 정치적인 세대로 거듭난 것이다.

이들이 ‘풍요로움’으로 기억되는 과거를 더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매스미디어에서 복고 열풍이 일기 전에 이들은 스스로 과거의 달콤한 기억을 찾았다. 1990년대 대중음악을 틀어주며 그 시절 유행했던 록카페 분위기를 낸 ‘밤과 음악 사이’ 같은 주점은 오래전부터 유행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가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놀아본 기억이 많은 세대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 할 수 있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거나 제주도로 내려가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것도 이들의 특성이다. 이들은 인생을 즐기는 것을 은퇴 후로 연기하지 않는다.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은퇴 후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대도 즐겨 듣는 그때 그 노래

‘놀아본 적이 있는 세대’는 ‘놀 줄 아는 세대’이기도 하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제작 후기에서 김태호 PD는 복고 무대를 완성해준 요소로 관객을 지목했다.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이 무대 위 가수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류 연예인과 대비해 자신들을 ‘잔류 연예인’이라 부르며 자학했던 가수들이 과거의 영광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복고 열풍과 관련해서 주목할 양상은 이런 1990년대 문화가 그다음 세대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대중음악을 즐기는 세대가 넓어졌다. ‘밤과 음악 사이’를 이용하는 연령층도 젊어졌고 1990년대 대중음악을 요즘 20대도 즐겨 듣게 되었다. 복고 열풍이 단순한 ‘추억 팔이’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예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