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문제 > 시사자료 > 가진 자의 약탈장 된 이 도시를 어찌할까

도시를 점령하라, 시민권을 되찾아라

파리 코뮌은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인 동시에 도시민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하비는 18~19세기 혁명부터 최근 오큐파이와 아랍의 봄까지 돌아보며 도시의 형성 과정과 도시 자체에 반자본주의 투쟁의 근거가 잠재해 있다고 말한다.

“혁명은 도시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앙리 르페브르의 40년 전 주장은 전적으로 옳았다.”

<반란의 도시>(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가 본래 잉여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려면 도시 공간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반란의 도시>는 프랑스 철학자·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가 1967년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출간 100주년 기념으로 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인용하면서 시작하는데, 르페브르는 그 2년 전 파리 코뮌(1871) 테제에서 영감을 얻어 <코뮌 선언>을 썼다. <코뮌 선언>을 쓸 때 그는 혁명운동이 ‘도시적 차원’에서 자주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공장 노동자(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전위세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랑스 공산당과 불화를 겪었다. 도시적 차원이란 공장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닌 다른 도시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역사의 핵심적 사건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혁명전략 차원에서 도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르페브르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그런 사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변혁의 주체임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거기엔 공장 노동자만이 아니라 도시 (일반)노동자들도 포함된다는 걸 암시했다. 이는 전통 좌파 통념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목적과 요구가 다양한 도시 노동자는 파편화되고 분열돼 있으며,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일쑤여서 조직화 수준이 아주 낮다. 게다가 꼭 좌파적인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전통 좌파는 그들을 조직을 혼란시킨다며 ‘도시 폭도’로 매도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비공식부문 주민집단은 도시 반란 때 늘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도시사회학을 연구한 하비도 르페브르의 생각에 동의했다. 바로 이 점이 <반란의 도시> 핵심내용으로 연결된다. 전통 좌파 대다수는 그들 비공식부문 노동자가 참여하는 도시 사회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하비는 얘기한다. 전통 좌파는 도시 사회운동은 체제 문제가 아니라 특수한 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에 혁명운동이나 진정한 계급운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투쟁만 고집 말라
주부, 수리공, 노점상처럼
삶 위해 싸우는 민중세력이
공동체로 결집해 지원할 때
부르주아지에 빼앗긴 도시를
시민의 것으로 되찾을 수 있다
그러자면 노동자와 주민 사이
끈끈한 연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하비가 보기에 그건 옳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 주요 자본주의국들에서 공장이 줄어들면서 고전적 산업노동자계급 자체가 소멸해가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지금 도시생활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더 큰 비중을 차지해 가고 있는 노동은 시간제 근무의 불안정한 미조직 저임 노동자들 몫이다. 혁명의 주역으로 간주돼 온 전통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프레카리아트)로 전락했다. 이는 반자본주의 계급·혁명투쟁에서 중요한 전략적 정치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다면 투쟁 역량의 조직은 어느 영역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하비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1848년 혁명, 파리 코뮌, 그리고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27년 상하이 코뮌, 스페인 내전과 1969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봉기, 1960년대 미국 시민혁명과 멕시코시티, 방콕, 프라하, 마드리드 봉기,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운동, 볼리비아 코차밤바와 엘알토 반란,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티아고 봉기, 그리고 이라크 침공 반대시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등 ‘아랍의 봄’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도시들에서 일어난 다양한 운동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이들 다양한 운동은 그저 글로벌하거나 코즈모폴리턴적인, 또는 보편적 인간 열망의 부수효과일 뿐 도시생활의 특수성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하에서 이뤄지는 도시 형성 과정과 도시 경험(즉 일상적 도시생활의 질) 자체에 반자본주의 투쟁의 근거가 잠재해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이나 노동조합 중심의 전통적 좌파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불을 지피는 도시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오해한다. “도시 사회운동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 착취와 소외에서 비롯된 반자본주의 계급투쟁과는 분리된 것, 또는 그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 더 근본적인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의 단순한 파생물이나 대체물로 해석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도시투쟁은 혁명적 잠재력과 의의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로는 혁명은 실패한다는 얘기다.

파리 코뮌도 전통 좌파는 단지 ‘프롤레타리아 봉기’라고 주장했으나, 하비가 보기에 그때는 계급적 억압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해방 욕구만큼이나 도시 자체를 부르주아지의 손아귀에서 되찾고 싶다는 도시민들의 욕망도 강했다. 그것은 계급투쟁이자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하비는 전통적 노동자주의 관점을 고집하지 말고 그런 ‘도시기반 투쟁’을 벌여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계급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서만 작동되는 게 아니다. 파업에서 공장점거에 이르는 노동자 중심 투쟁도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 수도 파이프 제조 및 수리공, 식품점, 노점상, 가스수리공, 요리사 등 더 나은 삶의 질을 갈망하는 주변 민중세력이 지역사회와 공동체 차원에서 대규모로 결집해 지원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노동자와 지역주민 사이의 끈끈한 연대가 있어야 한다.

하비는 국가나 계급의 폐지 같은 강령적 요구만 교조적으로 외치는 전통 좌파적 사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한다. 실현 가능한 반자본주의 운동을 위해 전략을 재평가하자면서, 그는 다음 3가지 급박한 실천과제를 제시한다.

부의 불평등 문제에 제대로 맞서 싸워라. 환경 악화와 생태계 변질이 위기 수준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외화(도시화)와 대량생산·소비를 유발하는 생활양식을 전환하라. (복리적) 성장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라.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한 주를 여는 생각 반란의 도시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에이도스 펴냄

한 주를 여는 생각

반란의 도시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